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그해 봄에는(김헌수)
금강하구사람
2020. 10. 21. 18:55
그해 봄에는
김헌수
말없이 흐르는 금강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고요한 두근거림으로 흘러가는 금강을 말입니다 그와 내가 나눈 입맞춤은 아직도 금강 어귀에 스릉스릉 스며들고 있을 것입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간 초봄에 그와 나눈 말이 새겨졌고 날리는 눈발을 둘이 맞았습니다 작년에 하늘로 돌아간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슬프다고 했지만 그는 마땅한 슬픔을 찾지 못하고 길을 나섭니다 다시 봄이 오고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금강의 눈발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와 그 사이에 새떼가 흘리고 간 울음을 주워봅니다 금강에서 사라져버린 시간을 홀로 두기로 했던 약속이 흐릅니다 누구도 낯설지 않은 금강에 있을 것입니다
-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모악, 2020
금강을 생각하면 할 말이 참 많지요 문 닫은 지 오래된 방에 당신이 기웃거리지요 입맞춤으로 말을 닫아도 그새 스며들던 말들 흐르고 흘러 사계절을 살았어요 어느 날은 강둑에서 보낸 말의 뒷모습을 주워 읽다가 또 한 계절을 살았어요
그리움과 망각 사이 지키지 못하는 약속으로 격리한 몸에는 슬금슬금 그리움의 싹이 나요 그 많은 약속이 다 여기로 흘러왔을까요 누군가 나처럼 강을 끌어안고 살겠지만 부디 당신은 강에 빠지지 말아요 괜찮아요, 이것으로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