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금강에 달이 피기까지(도혜숙)
금강하구사람
2020. 12. 10. 14:56
금강에 달이 피기까지
도혜숙
처음 물길을 튼 때부터 서 있었던가
금강의 물결 중에 한 호흡으로
뒤척이며 올라오는 너를 향해
갈대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태양이 빛살 하나를 꺼내 비로드 천을 짠다
이윽고 붉은 휘장을 강물에 펼쳐놓는다
강이 기른 물새가 시간을 기척하며 날아오르고
오랜만에 너의 숨소리는 만조이다
세상이 가끔 떠나간 것들을 이곳에 되돌려 보내는 건
강물이 마르지 않기 위해서이다
강가로 달려온 바람이 오래오래 울 때,
메마른 풍경들이 일시에 젖어 들기 때문이다
너의 발걸음도 바람이 이끄는 것,
몸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들어오는 너를 껴안느라
갈대는 목 언저리 핏줄이 휘어져 있다
강변은 이제 막, 달 하나를 피우고 있다
- 시집 『고요를 끓이다』, 시산맥, 2020
저녁으로 가라앉은 하늘은 그대로 잠들 수는 없지 오래 읽은 강의 이야기를 깔아놓기 시작하는 거야 이것은 천 리를 흐르는 물결의 위 그 물결의 위의 위에서부터 써 내려온 전통인데 거르고 걸러 더는 걸러낼 수 없는 시를 받아 읽다 보니 어느덧 생각이 부푸는 만조여서 반은 물에 담그고 반은 바람을 맞다가
갈대는 이제 눈을 감고도 감지하는 아랫도리의 말을 흔들흔들 허공에 쓰지 이렇게 강의 이야기를 삼켰다가 돌려주는 하구의 역사는 늙고 늙어도 밭은기침 소리를 숨기는 거야 강가에 살아본 사람은 알지 우리 기척보다 먼저 강은 젖고 오늘도 달을 피우기 때문이지 발걸음 닿을 때면 연애를 시작하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