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너도바람꽃(정진혁)
금강하구사람
2020. 12. 16. 13:35
너도바람꽃
정진혁
산기슭에서 만났다
오후가 느리게 떨어지는 동안
저녁이 모이고 모였다
너도바람꽃 불러 보다가
고 이쁜 이름을 담고 싶어서
손가락으로 뿌리째 너를 떠냈다
산길을 내려오다 생각하니
네가 있던 자리에
뭔가 두고 왔다
너도바람꽃은
아직 바람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다가
어둠 속에 저 혼자 꽂혀 있을 손길을 생각했다
내가 어딘가에 비스듬히 꽂아 두고 온 것들
빗소리가 비스듬히 내리는 밤이었다
- 시집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파란, 2020
우리는 이제 두고 온 것을 쓰자. 두고 온 그대를 쓰자. 두고 온 눈짓, 입술, 뜨거운 가슴까지 만났던 기억을 가만히 쓰자. 거기 있는 그 마음만 가져와서 빈 마음 채우는 시가 있어서 세상은 온통 그리움이다.
내가 품었던 그 이름 그대로 고이 받아쓰다 보면 그 삶의 뿌리가 그리워진다. 귀하디 귀한 이름 한쪽 안고 잠들면 내 시가 날아가 꽂힌다. 잠을 잊은 발걸음이 또 시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