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미조항(정진혁)
금강하구사람
2020. 12. 17. 16:50
미조항
정진혁
돌아오는 모든 날들은 방풍림 후박나무 사이를 지난다
모르는 생각을 베고 누우면
미조항 골목 어디엔가 버리고 떠나온 옛집이 있을 것 같다
오래된 마당 오래된 우물 오래된 부모 오래된 대추나무
봄에는 미조항에 가서
입 잃고 눈 잃고 길 잃기를
아름다운 생 하나 후박나무 아래 서 있기를
어느 생으로부터 눈물이 흐른다
온 생을 밀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야
미조항은 있는 것일까
미조(彌助)가 피었다
전생처럼
- 시집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파란, 2020
남해인지 해남인지 거기 가 있다는 사람은 짐작하지 못하는 아침저녁을 맞이한다는데 고만고만한 섬이 눈을 빼꼼 뜨고 나타나듯 어제도 그걸 본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바닷가 눈길 닿는 데마다 붙는 풍경이 하도 신기해서 껌벅껌벅 사진으로 담아 올리는데 이상하다 또 이상하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보낸다는 그 사진마다 무슨 생각을 얹을 수가 없네
딱 지명만 써서 보내주는 사진이 이곳 바닷가에도 흔한 그림이지만 왠지 그곳에 가서 한나절은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이는 이제 어디에 있어도 현지인 같아 오래 거기 산 사람처럼 골목마다 소식을 전해오는데 연락도 없이 슬그머니 뒤를 밟아 그 항구 어디쯤에서 마주치고 싶네 느리게 걷던 골목 끝에 이르러서 겨우 짜장면이나 짬뽕을 고민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