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겨울 강 너머(정진혁)

금강하구사람 2020. 12. 21. 14:47

겨울 강 너머

 

                           정진혁

 

 

한밤이면 언 강은 상처를 내며 울었다

강 건너 불빛이 따스하다

어쩌다 당신이 그리워졌다

강물은 얼기 시작한 지 오래다

살다 보면

강보다 먼저 얼음이 깔리는 가슴에

저 건너 조그만 체온을 들여다보고 살고 싶다

자주 먼 곳을 그리던 눈길이

스무 여드레 캄캄한 달을 밀고 나간다

긴장을 못 이긴 강심 갈라지는 소리

도처에 숨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미끄러지는 발길에 눈발이 시야를 가렸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커다란 귀가 거친 숨을 쉬었다

강이 풀리고 나면 다 흘러갈 뿐

서 있지 못할 몸

강물 속 수초처럼 누워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다

시커먼 아가리는 언제나 내 몸과 함께 살았다

나의 숨구멍을 위해

어쩌다 당신이 그리워졌다

처음 만난 것처럼

어둠이 떨고 있었다

 

 

         - 시집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현대시학, 2014

 

 

 

 

  강의 울음은 상처의 조각이다. 한 조각 듣고 그리움 끝을 잡는 이는 얼음의 말을 읽을 수 있다. 시야의 한계는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선언인데, 눈을 감고 언 강의 가슴속으로 들어가면 움츠린 말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강 너머 불빛이 따뜻한 것은 누군가 숨구멍을 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 소식은 달리 해석이 필요 없는 “자주 먼 곳을 그리던 눈길이” 보내준 편지다. 누군가 마음으로 찍는 발자국을 안고 살다 보면 머지않아 당신과 나의 오랜 결빙도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