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집사 2
말씀을 놓고 묵상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섭섭하다. 함께 사는 이 집사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나보다 훨씬 좋아서 교회당에 머무는 시간도 서너 배는 된다. 신앙을 유지하는 힘이 되는 것도 있으나, 조직에 깊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참여하다가 마음 상하는 일도 생긴다. 살살 눈치를 보다가 문득, 교회생활에 치중하지 말고 신앙생활에 치중하면 어때요… 하다가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차 한잔 놓고 시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섭섭하다. 함께 사는 이 시인님을 두고 또 하는 말이다. 한때 적극적으로 응원했던 일이긴 한데, 이제 시 짓는 시간보다 시 모임에 내놓는 시간이 더 많아 걱정이다. 글 쓰는 이들과 교제하는 유익이 있으나, 겉멋이 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또 눈치를 보다가 울컥, 시 모임에 들이는 시간 좀 아껴서 본인 글 다듬는 데 할애하라고요… 하다가 말이 뚝 잘리고 말았다.
세 번째 단락에 생각을 모으려고 앞 두 단락을 천천히 읽어보는데, 군데군데 불안한 마음이 묻었다. 내 안위에 영향을 미칠 낱말을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오늘 일기장에는 처음 맺힌 생각대로 적으려고 한다. 교회당도 없고 문학 모임도 없는 곳에서 기도는 어떻게 일어나고 시는 어떻게 피울까. 어둡고 구석진 방에서 홀로 무릎 꿇은 이가 집사다. 뒤뜰에 핀 꽃 한 송이 들여다보는 이가 진짜 시인이다.
'시인이 그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여백 (0) | 2021.02.08 |
---|---|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조급증 3 (0) | 2020.12.15 |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밥 짓기 (0) | 2019.07.19 |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시집 3 (0) | 2019.04.22 |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꽃 (0) | 201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