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살바도르 달리에게 (김헌수)

금강하구사람 2020. 10. 14. 15:03

살바도르 달리에게

 

                              김헌수

 

 

수염 하실래요?

물엿으로 고정시킨 프링글스 모양의 수염,

그 곁에 들끓는 개미들도 함께

 

담비 망토와 왕관은 챙겨 놓았나요?

 

환각과 정밀한 오늘을 연출하는 당신은

경이로운 일 속에 빠져들죠

 

동그랗게 확장된 눈으로 성게 40마리쯤이야 말을 거는 당신,

과장된 상상을 연기하던 모습이 보여요

 

산 위의 호수에 보이지 않는 남자,

신부의 옷을 보고

창가의 인물이*

도드라지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어요

 

담뱃갑에 챙겨 넣은 수염은

심상을 모으는 편집광처럼 보이게 하죠

 

러시아 사냥개 2마리와 당구 채를 들고 산책을 하는 당신 모습도 낯설지 않아요

 

에스파냐에 가면 현실 너머에 있는 당신을 만날 거예요

오늘도 새로운 고달픔을 잊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당신 속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름

살바도르 달리

 

 

*달리의 작품

 

 

             -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모악, 2020

 

 

  당신이 벌이는 일이 경이롭다고 판단하기 전에 거리는 곧 한산해졌어요. 미쳤다는 말을 놓고 사람들은 다른 길로 돌아갔거든요. 행인 없는 거리에서 수염을 말아 올리고 기름을 칠한다면 그건 당신의 아류로 보이기에 십상이지요. 그래서 나는 방에 숨어서 그날 배운 상상을 연출해요.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는 눈치를 피해 문을 닫아걸고 당신을 모방하지요. 당신처럼 수염을 달고 벽에 그림을 그려요.

 

  창가에 앉은 그림이 산책을 원하지만 아직 경력이 부족해요. 현실 너머 당신을 차지하려고 에스파냐로 가는 대신 달리, 이름을 은밀하게 받아 적어요. 발바닥의 근질근질한 유혹에 입술은 상상의 키스를 원하지요.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말만 하고 그들만의 그림을 그리지만 나는 이제 당신이 낯설지 않아요. 다만, 미쳤다는 말은 감염되기 쉬운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망설여요. 이게 바로 현실이지요. 그래도 한 번은 이렇게 중얼거린 적 있어요. 초현실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