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오래 있다가
정상하
손끝에서 둥근 물결이 밀려 나가서
밀려가는 물결로 강이 차근차근 넓어져서
물의 씨앗이 원심형이어서
번져가는 속성이어서
몸이 가지 못하는 데까지 갈 수 있어서
물결도 가 닿지 못하는
건너편의 건너가 또 있어서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이어서
첨부터 집은 없는 곳이어서
당신 하나도 건너지 못하는 곳이어서
수천 밤이 물소리로 가는 곳이어서
- 시집 『사과를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지혜, 2020
어찌 보면
시작도 끝도 하나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늘 좋은 날 되시기를
새해가 밝았어요. 금강하구는 오늘도 여전합니다. 내가 받는 은혜도 늘 변하지 않고요…
돌고 돌아온 날 하루의 ‘시작’을 ‘새해’라고 말하면서 안부를 묻는데, 이렇게 인사하고 보니 참 성의 없다. 시작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새해는 뭔가 없던 것이 일어날 것처럼 기대감이 생기는 게 분명하다. 친구 몇이 인사를 건네고 나도 마음을 주다가, 문득 작년에 나눈 인사를 그대로 하는 게 계면쩍다.
오래 잊고 떠돌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섞어보라고 옆에 복을 놓고 건강을 더하고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약속을 끝으로 또 알 수 없는 한 해 속으로 들어간다. 각자 머무는 곳 어디에서도 처음 받은 것처럼 시를 받기를. 서로 도달하지 못하는 사정을 시구에 얹으면 강 건너편 사람 마음을 나눠 읽으리라.
내 몸에 오래 있다가 흘러가는 시의 마음 한 조각 당신이 꼭 안아주면 운이 좋은 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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