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졌다(황구하)

금강하구사람 2020. 12. 31. 15:48

졌다

 

                황구하

 

 

한나절 내내 미동도 없다

 

늦가을 오후 바람 좋은 풀밭에 앉아

어디 보자, 누가 먼저 움직이나

북천 너럭바위 두루미랑

수읽기를 하다가 겨루기를 하다가

스르르 손풀고 일어섰다

 

그는 외발로 서 있었다

 

 

          - 시집 『화명』, 詩와에세이, 2018

 

 

 

 

늦가을 오후로 앉아

마음에 결실 한 줌 얹으려다가

 

언젠가 그 강가에서

바라는 것 없이 바람을 맞던 날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적적하지 않은

보내고 기다리지 않아도 그리움 둥둥 떠오고 떠가는

 

저녁에야 깨닫는 하수下手의 승복

늙어서도 그리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