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방풍림(문화영)

금강하구사람 2020. 10. 29. 15:27

방풍림

 

                     문화영

 

 

금남로 상가들은 마수걸이도 못하고

문을 닫는 날이 많았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에 셔터를 내리다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주곤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학생들이 리어카 밑으로 숨어들고 잡혀가는 걸 보았다

 

폭풍 속에서 상가들은 덕지덕지 세일 전단지를 붙이고

바람막이처럼 서 있었다

곤봉을 막아주며 불안을 잠재웠다

 

벽이 문이 되도록 두드리는 맨주먹들

 

상가로 쫓겨 들어온 학생들은 찢어진 셔츠를 고쳐 입고

피를 닦고 사라졌다

어두운 곳을 향해 내려가는 뿌리들처럼

 

상가는 바닥을 움켜쥐고 궁핍을 키우고 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데모하지 말라고 나를 감시하던 때였다

퇴직할 때까지만 얌전히 있으라고

아침마다 눈알을 부라렸다

 

나는 구경꾼이었다

 

 

                   - 시집 『화장의 기술』, 詩와에세이, 2020

 

 

  문을 닫다가 뭔가 달려 들어오면 무슨 일인지 묻기 전에 숨기는 버릇 언제부터였을까 쫓기다가 더는 달아날 곳이 없을 때 숨어드는 곳이 내 품이라면 우선 안아주는 버릇 이것은 오래된 학습의 전통인가 아니면 오래 참았다가 열린 마음인가 잠시 소란과 정적이 교차하고 나는 또 버릇처럼 다독거릴 뿐이지

 

  그렇게 내 안에 든 것이 빠져나갈 때도 비슷한 모양이네 상황을 정돈하기 전에 슬금슬금 풀어져 갈 길을 재촉할 때도 마찬가지지 많은 생각이 들어왔다가 슬금슬금 나가는 오후 그거라도 없으면 내 궁핍을 해결할 수 없으리라 하나의 틀에 들어온 생각 조물조물 만지다가 몇 조각 모으는 구경꾼이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