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풀벌레 기도원(강우현)

금강하구사람 2020. 11. 6. 17:47

풀벌레 기도원

 

                        강우현

 

 

해뜨는 마을과 푸르지오 사이

이면도로를 걷는 새벽은 한 점이지요

어둠의 이마가 빛나기 시작하면

돌 틈마다 자리 잡은 푸른 기도원에서 찬송 소리가 나요

 

그곳은 늘 문이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가 기도할 수 있어요

새벽은 눈물을 닦아주려 숨차게 걸어왔을 거예요

 

아직 어두운데 풀벌레 신도들이 두 손을 높이 쳐들어요

말을 촘촘히 엮은 비로 구석마다 쓸어내면

푸른빛이 고무줄처럼 늘어나요

저 통성은 가지나 잎을 쳐낸 몸통 그대로여서

바닥에 떨어질 만한 것이 없어요

 

달이 종을 쳐요 소리가 닿는 곳마다 길이 환해져요

어느새 아침의 입속에 붉은 목젖이 보여요

그분은 어디까지 가야 만날까요

내일도 다리를 걷어 올리고 풀포기를 헤치고 나아갈 거예요

 

고개가 곧던 푸르지오에서 나온 여자가

해뜨는 마을 쪽에서 나는 가난한 욕심을 기웃기웃 녹음해요

믿기만 하면

절단기나 펜치 없이도 가는 나라

저 마음은 누가 준 선물일까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눈을 감아야 보이는 길

 

하루 한 번씩 들르는 풀벌레 기도원엔

풀종다리 권사 철써기 집사 여치 집사가 늘 먼저 와 있어요

 

 

                       - 《우리詩》, 2020년 11월호

 

 

 

 

  도시의 새벽이 “해뜨는 마을”과 “푸르지오” 사이를 걷는다. 부족하거나 넉넉한 경계를 벗어나 기도원의 찬송을 들을 때 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 소리는 본디 마음에 두었다가 잊히기도 하고 때론 남의 일처럼 여기기도 했던 것인데, 이제 눈 감아야 들어설 수 있는 문에 시 한 편 놓는 기쁨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이 길로 들어서게 한 이에게는 감사요, 이렇게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고백이다.

 

  신과 나를 잇는 것이 찬송이요 기도라면 사람 마음을 잇는 시에 머무는 일 또한 숭고의 영역에 든 것이다. 풀벌레들의 “통성은 가지나 잎을 쳐낸 몸통 그대로”이니 알뜰하게 그 길을 짚고, 더구나 “바닥에 떨어질 만한 것이 없”는 시를 얻으니 그 나라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이 경험을 얻은 자는 내일도 시 한 줄 가만히 얹으며 말할 것이다. 기도가 막힐 때마다, 사람이 막힐 때마다 풀벌레 기도원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