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남은 생각

금강하구사람 /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다(황구하)

금강하구사람 2020. 12. 28. 17:28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다

 

                                            황구하

 

 

나무 열매를 먹는 물고기가 있다네

물에 떨어진 열매 아삭아삭 삼키고 잘 여문 씨앗을 배설한다네

 

나무는 물고기의 혈통이라는 생각

그래서 연목구어라는 말도 가능태로 다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해보네

 

숲은 스스로 길을 내는 물소리 물고

아주 먼 길 거슬러 유영하는 어족의 나라

 

뜨겁고 습한 우기를 건너 하늘도 푸르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바람 한 타래 알을 매달고 둥근 물결 이파리 사운거리네

 

랄랄랄라 나무 한 마리 두 마리 꽃을 피우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더 어두운 곳으로 흔들고 흔들린다네

 

세상 가장 슬픈 목숨은 나무로 서 있는 물고기 부족

눈물이 범람할 때마다 깊은 잠을 헤엄쳐 어린 물고기 돌아온다네

 

당신이 허공으로 두 팔을 뻗는 동안

물고기 몸에 나뭇잎 문양을 새겨 넣으며 또 하나의 영토를 건설하는 나무가 있다네

 

 

                                     - 시집 『화명』, 詩와에세이, 2018

 

 

 

 

  내가 걷는 길에는 물결 흐르듯 바람이 일지 바람은 발밑 잠잠한 호수를 기억하거나 냇가 졸졸 내리던 시간을 재생하는지도 몰라 이 한 가지로 물결과 바람의 동작을 하나로 엮을 수는 없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생각을 얹어보는 거야 그러면 가슴에서 바람이 일어나지 생각에 생각을 기대면 또 한 생각이 다가오지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내 고물 컴퓨터를 켤 때 윙 소리가 나고 내겐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한 계절 또 한 계절 그렇게 계절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오늘은 물고기가 헤엄쳐 나무에 열리고 나무에서 나는 물고기는 다시 나뭇잎을 닮은 헤엄으로 우주를 돌지 그 모양을 따라가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글자들의 유영이 나타나지 화면에 그들의 역사를 한쪽 쓰고는 나는 다시 알이 슬고 또 바람에 날리는 깨알 같은 상상의 씨를 뿌리는 거야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연목구어 마음만으로 열리는 물고기를 포기하다가도 그렇게 포기하는 중에도 돌아보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네 그래서 그런 거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가 그래 발걸음이 오늘도 여기 머무는 이유가 그래 바람의 길을 따라 걷노라면 이렇게 먼 곳을 바라보는 문장을 잇노라면 손 닿지 않은 나무의 무늬가 내려와 멀리 헤엄쳐 달아난 물고기가 파닥거려 이렇게 당도한 기별을 감사히 받게 돼 언제부터였을까 나무와 물고기의 역사 언제부터였을까 당신과 나의 눈물이 헤엄쳐 서로 닿던 것이… 이거 아직 가슴을 열고 읽으면 안 돼 거친 문장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어 내일 컴퓨터를 켤지 모르지만 매끈하게 만진 다음에 읽으면 좋겠어 오랜만에 켰더니 꺼졌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고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난리네 우선 등록.